며느리는 왜 며느리를 학대하는 시어머니가 될까? (@못골)
사용자에서 노동자로, 혹은 노동자에서 사용자로, 박수치는 사람에서 박수 받는 사람으로 사회적 지위가 완전히 바뀌게 될 때 올 인식의 변화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며느리에서 시어머니의 지위로 바뀐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현재 심성에 근거하여 앞으로 변화를 예측하지만 너무나 급격하게 바뀐 지위는 그런 예측마저도 대부분은 빗나가게 된다.
현직에 근무할 때 남교사보다 여교사들이 육아, 가사로 업무에 부담이 더 크리라 생각했다. 대개의 교사들은 정시 출근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출근한다. 일찍 출근하니 30분 정도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퇴근 시간을 조정하자는 건의를 했다. 여자 학교장은 자신이 교사일 때는 학교가 전부였고 학교생활에 전념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젊을 때 힘들었던 시기를 생각하여 여교사들의 고단함을 덜어 주려는 배려보다는 자신이 당했기 때문에 젊은 교사들이 학교생활에 전념하는 근무 자세가 당연하다. 그래서 퇴근 시간 조정은 불가하다고 한다.
군대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악의 대물림이라고 할까? 졸병 때 구타를 많이 당할수록 선임이 되면 구타를 많이 행하는 사병이 된다. 나는 맞았지만 내 후임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겠다는 악의 연결고리를 끊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으면 사회 집단으로 이어지고 있는 악의 고리를 끊기가 어렵다.
며느리 학대는 조선 시대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고 남존여비 사상과 상놈과 양반의 구별이 뚜렷하던 시대의 일반적 현상이었다. 그때는 모든 곳에서 차별과 불평등이 당연시되던 사회 구조였다. 남성들이 혼인하면 아내와 처가에서 생활하는 남귀여가혼 혼인제도에서 친영제로 조선 중기 이후 신부가 시가집으로 시집을 가는 제도로 바뀌었다.
시가집에서는 며느리가 최말단의 가족 구성원으로 편입되면 시어머니가 아내이며 어머니로서 하던 노동을 며느리에게 전가한다. 며느리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육체적으로 핍박하는 가학적 입장으로 바뀌어 이제 시어머니는 군림하게 된다. 그런 분위기가 조선 시대 일반적이었다. 늘 시킴을 받는 며느리는 고되기 이를 데 없지만, 상대적으로 며느리에게 명령하고 징벌하는 상급자로서의 시어머니 지위는 누구나 갖고 싶고 행사하고 싶어 한다. 그런 지위가 주어지면 현재의 시점에서 하는 행위가 전부인 양 생각하고 며느리가 얼마나 힘들 것이라는 이심전심의 자비심은 애써 마음 한구석으로 짓눌러 버린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같은 사람이다. 지위가 바뀌니 그에 맞추어 내재하고 있던 복수심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이 당했던 그 고난 겪은 시절을 너도 당해야 한다는 몹쓸 심성이 시어머니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이 여자로 태어난 일, 조선에서 태어난 일, 그리고 남편을 잘못 만난 일을 인생 최대의 후회스러운 일로 들었다. 그런 후회는 지금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리적 환경은 농경사회에서 우주 시대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지만, 심리적 환경은 아직도 조선 시대 말기에 머물러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몇몇 선각자들의 희생적인 선도역할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딸, 며느리, 시어머니의 갈등 고리가 남자들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남자 역시 고부 갈등 사이에서 취해야 할 입장이 혼란스럽고 난감하다. 아내 입장보다는 효자라고 하는 전통적 입장을 중시하여 어머니 편에서 아내를 고압적으로 바라보는 남편의 인식이라면 이 악순환의 벗어남은 거의 절망적이다. 그런 문제로 많은 가정이 파탄 나기도 한다. 힘들게 핍박받는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은 고부간을 조정하고 중재하며 밀착시켜주는 타협의 고수가 되어야 한다.
조선 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부장적 요소는 여전히 우리 정신세계에 사회문화의 제도적 잔재로 존재한다. 고부갈등도 그러한 잔재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오늘날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 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또 다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월이 변하여 오히려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시집을 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며느리에게 사는 시집살이는 이미 서구사회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부자연스러운 고부 관계가 싫다 보니 혼인한 자녀는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부모 역시 자녀와 서로 멀리함으로써 영향을 받지도 주지도 않는 독립적 관계를 유지해 서로 심리적 편안함을 도모하려 한다. 그 결과 오늘날 혼인한 자녀와의 가족관계는 심리적으로 과거보다 기계적이고 형식적이며 독립적인 가족관계로 바뀌어 있다.
고부 관계 역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고 그 관계 속에 서로를 녹여 가는 과정이다. 너를 보며 나도 그렇구나! 하는 반성과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랑이 먼저이다. 마음을 열고 측은지심을 드러내어 서로 얼마나 힘들까! 하는 자비심을 갖고 상대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인의 업적을 혼자서 이룬 것으로 착각하지만 수많은 주변 사람들의 지원과 연대와 관계 속에서 나의 현재가 만들어진 것이다. 따뜻한 심성을 베풀어 함께 가족 문제를 개선해 나가려는 동반자로서 연대감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