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튀르키예를 만나고 돌아왔어요 2023.09.25. 다섯번째 이야기
70대 아버지, 30대 두 딸이 함께 취향을 담아 상상 속의 공간 '땡비'를 만들어가는 뉴스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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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이죠? 여러분은 여름 휴가를 잘 보내셨나요? 땡비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를 다녀오며 여름 방학을 가졌습니다. 올 여름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땡비에서 나눠볼 오늘의 이야기는 🐝'튀르키예'입니다. 저희가 경험하고 느낀 튀르키예에 대해서 솔직하게 펼쳐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행복한 에너지가 전달되어 읽고나면 '아! 나도 여행가고 싶다! 튀르키예에 가고싶다!'라는 마음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푹 쉬다온만큼 앞으로 땡비도 다시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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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흔희)
항공권을 발권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가는 중에 터키 항공의 직원들이 아이를 보더니 다른 창구를 안내해 주었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체크인 창구가 4~5개 정도 열려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승객들은 바로 탑승 수속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구역이다. “네 덕분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구나. 고마워.“하고 말하니 아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싱긋 웃는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자 우리를 맞이해 주는 것은 습도가 낮은 쾌청한 저녁 바람이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환대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튀르키예 사람들은 아이를 보고 웃어준다. 관광지라 붐비는 화장실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으니 이미 줄을 서 있던 사람이 아이에게 순서를 양보해준다. 이스탄불에서 먹었던 홍합밥이 상했나 보다. 어른들에 비해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운다. 카파도키아에 가는 한 시간 정도의 비행중에 갑자기 아이가 토할 것 같다고 말한다. 비닐봉지 손잡이를 아이의 귀에 걸어 주고 혹시 모를 참담함을 대비하고 있으니 옆자리의 승객이 “아이가 어디 좋지 않냐”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걱정스레 묻는다. 옆자리 승객은 아이의 이마에 손을 짚어 보고 열이 없는지 확인해보며 불안한 아이와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지나가던 승무원이 아이를 보더니 “문제가 있냐”고 물어 “아이가 복통이 있다”고 하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분의 비닐봉지, 엄청난 양의 휴지, 미네랄 물 등을 챙겨 주었다. 주변에 앉은 다른 승객들도 아이를 ‘프린세스’라고 부르며 응원의 말을 건넨다. 다행히 아이는 잘 견뎌주었고 카파도키아 여행을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치니 호텔 직원이 아이를 보고 '프린세스'라고 부르며 팔을 벌린다.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고개를 끄덕이니 아이가 그 직원에게 달려간다. 직원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한 바퀴 돌아준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카파도키아 투어를 시작하며 가이드의 안내를 듣고 있는데 아이가 지친 표정이다. 근처 벤치에 앉아있으니 한 할머니가 옆에 같이 앉는다. 나는 영어로, 할머니는 튀르키예 말로 소통을 한다. 무슨 말인지 서로 알아 듣지 못하지만 표정이나 눈빛이 참 좋다. 뜻은 알지 못해도 좋은 말처럼 느껴진다. 웃으면서 내가 무슨 말인지, 사실 못 알아듣겠다고 말하니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얼굴에 갖다 대는 시늉을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가이드에게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해석을 해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아이가 참 예쁘다고 하시네요. ”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줄 줄도 안다. 배려와 존중을 받아본 사람이 누군가를 존중하고 배려해 줄 수 있다. 아이에 대한 튀르키예의 환대가 부러웠다. 그곳에서는 아이와 함께한다는 이유로 따뜻한 말과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고 자라난 튀르키예 어린이들은 자라서 또 다른 어린이에게 자신이 받았던 환대를 베풀어 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에 갔다. ‘8세 미만의 어린이와 개는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노키즈존, 케어키즈존이라는 말이 장소를 채운다. 튀르키예에서 환대받고 온 어린이는 한국에서는 잠재적인 사고뭉치로 대우받는다. '묻지마 폭행' 사건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지나친 민원에 초등 교사가 여럿 계속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튀르키예에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것. 많은 문제의 출발점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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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동물들의 경험치에 대하여(@아난)
갈라타성 인근에 위치한 숙소에서 일어나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어젯밤과는 달리 이른 아침 한적해진 골목이 낯설었지만, 오히려 그 분위기가 더 좋았다. 길게 펼쳐진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자 양옆으로 연결된 골목에서 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사람을 봐도 도망가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따라오고 애교를 부렸다. 우리는 분명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찍거라’하는 느낌으로 고양이들이 쭈-욱 기지개를 켜며 포즈도 잡아준다.
여행 내내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어디를 다녀도 크기에 상관없이 개와 고양이들이 거리에 널브러져 있다. 대형견들은 더위를 먹은 것인지 가게 입구 앞 그늘에 축 늘어져 더위를 피한다. 숙소 옥상부터 길거리, 차 위 보닛까지 고양이들은 배를 다 뒤집어 보이며 자고 있다. 어찌나 편하게 자는지 길 가는 내내 개와 고양이 구경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바쁜 인간들과 대조적일 정도로 동물들은 다른 시간대에 있는 것처럼 느린 박자로 움직였다.
그런 고양이와 개들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얼마나 많은 세대로 이어져서 개와 고양이들이 ‘인간은 위험하지 않다’를 경험했으면 이렇게나 편하고 행복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걸까?” 튀르키예에는 동물에게 잘해야 내세에 좋은 삶을 산다는 믿음이 있어 동물에게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나라라고 한다. 고양이와 개들의 선조로 거슬러 올라가 어느 때부터 누적되어온 따뜻한 경험일까.
아비노스라는 도자기 마을에서 하얀 큰 개가 물가에서 홀로 물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무더위를 식히려 물을 끼얹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그 순간 나는 그 개가 누구의 개도 아닌 우리와 똑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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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욕구 위의 종교(@아난)
튀르키예에 도착하자마자 7살 조카가 ‘히잡’을 궁금해한다. 옛날에 튀르키예에서는 여자가 재산처럼 여겨져서 재산을 보호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자에게 히잡을 입혔다고 했다. 우리나라 양반 규수처럼 귀족인 걸 드러내는 표시라고도 했다. 그러자 조카가 ‘히잡을 안 쓰면 막 사는 여자인 건가’해서 온 가족들이 당황했다. 자유를 위해 히잡을 벗어 던지려는 여성들이 결코 막 사는 여성들은 아니기에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의 전통문화였고 존중해야겠지만 여성의 자유도 중요하기 때문에 요새는 히잡을 벗고 쓰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는 이야기로 마쳤다. 바깥에 5분만 서 있어도 사람이 익는 더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색으로 덮은 히잡은 충격적이었다. 또 생각보다 다양한 패션의 히잡이 있었다. 머리통만 가리는 히잡 밑으로 나이키 티셔츠가 살짝 보이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히잡 위에 툭 걸친 선글라스의 그녀를 보며 술탄의 시대와 현재의 자본주의가 섞인 요상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 앞 큰 확성기가 있었는데 야밤에 도착했을 때는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었다. 새벽 4시에 그 쓰임새가 드러났다. 절에서 나오는 염불 소리 같이 기도를 방송하는 확성기였다. 확성기와 가까운 창가 방과 꽤 먼 안쪽방 어디에서든 잘 들리도록 설계된 큰 소리를 내는 스피커였다. 가족들은 모두 우리나라 같으면 “@#@!#$! 마! 잠 좀 자자!”라고 야밤에 외치는 사람이 있을 텐데 튀르키예에는 없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이스탄불에도 카파도키아에도 우리가 방문했던 모든 숙소 인근에 스피커가 있었다. 하루에 4번 새벽 4시, 오후, 저녁, 밤에 기도 소리가 났다. 관광지, 시골 어디에나 있는 스피커를 만나면 ’여기에도 있구나!‘하며 잠은 글렀다고 웃었다.
유창한 한국어로 여행 내내 놀라게 한 튀르키예인 가이드 ‘알리메’에게 튀르키예의 종교에 관해 물어보았다. 튀르키예 인구 97%가 무슬림이지만 국교는 없다고 한다. 종교를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대부분 태어나면서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태종교로 무슬림이 된다. 다른 무슬림 국가보다 자유로워 지금은 히잡 착용도 자유다. 그러나 그녀의 할머니 세대에서는 정부 성향에 따라 히잡 착용이 금지되어 히잡을 쓰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받고 심지어 고문을 받을 정도로 종교적 이유에서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맥주도 모두 몰래 숨어서 마실만큼 엄격하다. 대통령도 맥주를 마시는 사진이 찍혀 지지율이 급락할 정도로 민감하다. 대통령 후보의 종교 관련 공약이 승패를 결정짓기도 한다고 하여 ‘종교가 이 정도라니!’ 다른 세계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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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하며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에 카파도키아에는 1300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있다. 무른 돌들로 구성된 지대의 특성이 있어 사람들이 손으로 혹은 곡괭이 같은 도구로 팠다. 일상을 포기하고 지하도시를 만들어서라도 종교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지하도시 중 가장 큰 ‘데린쿠유’를 방문했다. 춥고 어둡고 좁은 이곳에서 예배당, 학교, 가축우리 등을 만들어 많을 때는 수만 명이 백 년이 넘게 살았다고 한다. 지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나면 곧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산 중턱에는 동굴 도시가 있었다. 가파른 암석지대 위에 돌을 파서 수녀원과 주방을 아파트처럼 만들었다. 기독교, 무슬림 모두 튀르키예 땅에서 서로 치열하게 고지전을 하는 와중에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고자 성지를 만들어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믿음이 개인들을 묶고 수천 년이 이어지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하도시를 나오며 엄마는 ’차라리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하면서 자폭을 하지 지하도시에서는 갑갑해서 못 살겠다‘고 했다. 햇살과 바람을 내가 원할 때 맞고 가릴 수 있는 자유.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자유. 계곡에서 물장구치며 가족들과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자유. 내게는 당연했던 자유가 이곳에서는 이방인이기에 허락되었던 것이었다. “괜찮으세요?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말한 자유를 경험해본 적 없고 지금 주어진 생활이 당연한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나의 오만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들의 관점에서 내게는 당연한 유교적 질서들이 답답할 수도 있다. 이래서 여행이 필요하다. 내게는 당연한 것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기회는 저절로 일상에서 찾아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올 여름 내게 그 어느 여행보다 강력했던 생경함과 의구심이 남아있다. 일상에서도 내게 드리워진 히잡은 무엇인지 끈질기게 질문을 던져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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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튀르키예(@못골)
터키에 대한 우리들의 호감도는 좋은 편이다. 한국 동란 때 참전해준 때문이기도 하지만 터키의 옛 명칭은 돌궐이다. 돌궐은 우리 동이족과 언어 체계나 단어 부문에서 유사성이 많다. 1주일간의 터키여행에서 직접 마주친 사람은 10명 정도이다. 그들을 통해서 전체를 짐작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겠지만 어쨌든 나의 생각을 서술해 본다.
첫째 날, 승합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심하게 비탈진 상가 2층에 마련된 숙소의 입구는 매우 번잡한 곳인데도 기사는 속도를 크게 줄이지 않고 운전을 한다. 차에 내릴 때 오토바이와 살짝 스쳤다. 오토바이 주인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가버린다. 그냥 불편해도 서로 양보하며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좁고, 메마르고 성급한 우리들의 품성과는 아주 다르다.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서비스센터를 찾아갈 때, 길을 물으니 사람들은 자신이 알려 줄 수 있는 능력 내에서 최대한 도와주려 애를 썼다. 외국인은 현지 사정을 잘 모르니 수리 요금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 대수롭지 않게 그냥 무료라고 한다. 같은 경우 수리비가 우리나라에서는 1만 7천원이다. 바다 끝에 자리 잡은 요새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구매하려고 하니 매표소 여직원이 말린다. 공사 중이라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직원이 아니라 관광객의 관점에서 배려해주는 그녀의 자세가 고맙다.
해변에는 비키니로 일광욕을 하는 사람, 땀 흘리며 조깅을 하는 사람, 바다에 풍덩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자기 생활에 열심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시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공항에서 카파도키아로 옮겨 가기 위해 줄을 서 있자 원주민 여성이 아이와 함께 있으면 줄 서는 곳이 다르다고 말한다. 아이가 있으면 우선권을 부여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아이들을 귀하게 대한다. 아이들과 개들을 데리고는 입장이 불가하다는 개 같은 우리들의 커피 업소와는 한참 다르다.
카파도키아에서 여정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사십 정도 되어 보이는 남루한 옷차림의 여인이 ‘헬로’ 하며 낯선 외국인인 나를 불렀다. 환영인지 애원인지 구분되지 않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애원 쪽으로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동굴 호텔이 있고 관광지 특유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수선한 환경이 이제 개발을 시작하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개발에 밀려 자금력이 없는 원주민은 뒤로 밀려나고 투자가 목적인 외지인들이 주요 지점을 장악하고 있었다. 멀리 산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시가지도 주택이라기보다 관공서, 펜션 같은 저택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주민의 동네는 아닐 것이다. 먼지 자욱이 앉은 벤치 위에 공간을 메우고 있는 노인들은 날씨 때문일까 모두 지친 모습들이다. 식사 서빙을 하는 터키의 젊고 예쁜 소녀도 여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산다는 것이 고달프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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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젊은 연인을 봤다. 사랑한다는 감정이 온몸에서 느껴지는 표정들이다. 남자의 품에 기대어 사랑하는 사람을 올려보는 시선과 자세가 휘리릭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지만 그들 모르게 촬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장면이 휘발된다. 늙은 아시안 할배가 자신들을 촬영하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나를 향해 웃는다. 나도 즐거운 표정으로 모델이 되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 보낸다. 상대방이 악의가 없다면 나도 얼마든지 호응해 줄 수 있다는 당신들의 열린 마음이 좋다.
시장에서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이 손흥민의 팬이라며 한국 사람에 대한 친근감을 보인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낯익은 친구일까? 외국의 이방인일까? 한국 사람임을 알고 여러 가지 말을 이어보려는 친근함이나 도와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피부로 느껴진다. ‘이모'와 '아줌마’를 연발하며 호객하는 그들의 행위도 악의보다는 친근감으로 와 닿는다.
어른은 허리를 펴기도 힘든 좁은 지하도시 속 관광에 조심, 또 조심했지만 천장에 나도 머리를 몇 번이나 부딪혔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매우 큰데도 안전장비 하나 없이 입장객을 들이는 튀르키예의 무감각에 놀랍다. 작고 보이지 않는 곳도 대비해야 한다. 안전을 중시하는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손녀와 내가 그렇게 환상처럼 그렸던 아흐랄라 계곡은 장산 계곡만도 못한 관광지였다. 손녀도 크게 실망하는 눈치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정도이지 우리처럼 아이들이 미친 듯 물에 뛰어 들어가는 경우도 없다. 물 위에 말뚝을 박아 임시 건물을 올리고 평상을 설치했다. 그 위에 앉아 음료수와 맥주를 주문했다. 주변에 둘러보아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다. 여기는 이슬람 문화라 술을 즐기지 않는다. 집에서야 어떨지 모르지만 어쨌든 밖에서 술 마시는 사람은 볼 수가 없다. 건전해 보이기는 하지만 왠지 갑갑한 생각이 들었다. 삶의 주변이 갑갑하고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를 때, 삶이 덧없이 느껴질 때, 그들은 무엇으로 대신할까? 일상에서 소음처럼 들리는 알라를 부르는 소리가 그들의 유일한 안식일까?
이상의 경험이 내가 만난 터키인들이다. 짐작이나 들은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직접 만난 터키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하다. 이방인이 일상으로 널브러져 있으니 관광객은 이미 생활의 일부이다. 때문에 거리감보다는 친밀감과 배려심으로 가득하다. 빠르고 크고, 많으면 대충이 된다. 그들이 그런 것 같다. 도심은 우리만큼 빨리 빨리이고 시골은 넓고 커서 세밀함이 없다. 물산이 풍부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동서가 만나는 요충지이기 때문일까? 고달픈 삶 속에서도 그들의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다. 긍정적인 사고에 낙관적인 삶의 태도가 더해져 겉으로 보여 지는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삶을 즐기고 수용하며 생활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독특한 사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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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님 : 좋은 친구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며 '나는 어떠한가, 나에게 좋은 친구란 무엇이고 누가 있을까'를 떠올려보았고 나라는 사람을 포함하여 총 네 사람의 생각을 나눠볼 수 있어 너무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삶의 방향성을 잃고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 세 분께서 각자 정의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행복' 혹은 '행복한 삶'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 등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 속 어떤 목적을 세우고, 어디서 동력을 찾는지에 대해 글을 써주시면 제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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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땡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개
- 못골👨🏻🎨 : 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왔다. 한계를 넘어 뭐든 끝까지 가는 남다른 의지력을 지녔다.
- 흔희👩🏻🎤 : 눈치를 보지않아 '인간 사이다'로 불리나 K장녀로 은은히 돌아있다. 직업 때문에 생계형 낱말수집을 한다.
- 아난👩🏻🍳 : 목구멍 보이게 웃는 큰 리액션과 미친 에너지 때문에 '어린 짐승'으로 불렸다. 빵을 굽는 방구석 빵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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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땡비 어땠나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읽으면서 머리를 스친 어떤 의견이든 편하게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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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비 이거 뭐야? 하며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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