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달, 한 조각(@흔희)
불확실한 것, 막연한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겪어 보지 않은 일이라도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미리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어찌된 것이 나는 늘 겪어보고 깨닫는다. 부딪쳐보고 깨져봐야 앞으로를 예측할 수 있다. 한 바퀴를 돌아본 운동장을 몇 바퀴 더 도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한 바퀴를 다 돌기도 전에 운동장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보는 것은 나에게 막막하고 불안한 일이다.
시작이라는 말이 설렘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다. 학창시절 3월이 되어 반이 바뀔때마다 마음 맞는 친구를 찾지 못해 속으로 한 두달은 끙끙거리곤 했다. 입시도 취직도 업무도 처음은 늘 실패를 했었다. 한 바퀴의 궤도를 직접 몸으로 겪어야 앞으로를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 준비가 서툴고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인생에서 기회를 잡아야하는 굵직한 시기가 올 때마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기회는 놓쳐버리고 세번째만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 입시도 취직 시험도 삼수생 생활을 했었고 취직을 하고 맡은 업무도 3년차가 되어서야 제법 여유를 갖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6월은 안정감을 주는 달이다. 지금하고 있는 일의 속성상 한 해가 3월부터 시작된다. 6월은 봄부터 시작되는 한 해를 두 세달 겪고 어느 정도 몸이 생활에 적응을 해 나간 시기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새롭게 익힌 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는 두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익혀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나면 낯선 것은 빤한 것이 된다. 무언가가 몸에 익으면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가려진 것들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고개를 치드는 시기가 6월이다.
6월에는 가슴 설레는 것들이 많다. 벚꽃이 진 가로수의 잎에는 녹음이 찾아오고 길목은 한층 더 푸르고 싱그러워진다. 옷차림은 가벼워지고 해는 길어진다. 초여름 밤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달뜬다. 밤이 되면 한낮의 화려함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로등에 반사되어 초록빛이 부서지는 나무의 흔들림이 보인다. 반팔에 청바지를 챙겨입고 걸어가다보면 살갗에 언뜻언뜻 스치는 초여름밤의 선선한 바람도 느껴진다. 길가에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름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밤이지만 활기찬 여름날 그 특유의 생기가 좋다.
그렇다고 6월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6월 말이 되면 장마가 찾아온다. 날은 덥고 습해진다. 온몸에 습기가 눅눅하게 들러 붙는다. 공기를 비틀면 뚝뚝 물이 짜질듯이.
장마가 찾아오면 잇달아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13년의 여름. 하늘엔 구멍이 뚫린듯 비가 미친듯이 퍼부어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운전면허 도로주행시험을 보러가야했기 때문이다. 주말 동안 도로주행 연습을 아버지와 함께했다. 이따금씩 역주행을 하던 도로의 무법자를 조수석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온 몸에 힘을 주며 비명을 질렀고 나는 몸살이 나기도 했었다. 매주 모의고사를 치듯 아버지와 나는 주말을 치열하게 보냈다.
이번 도로주행시험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 시험은 코너를 도는데 무단횡단 하던 사람을 칠 뻔하여 그 자리에서 실격을 당했다. 두 번째 시험날. 기상청에서는 집중호우주의보를 띄웠다. 느낌이 좋지 않다. 직장동료들도 하늘을 보더니 같이 걱정을 한다. 앞이나 제대로 보이겠냐고. 모두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시험장에 들어갔다. 감독관이 비가 많이 와서 원한다면 일정을 미룰 수도 있다고 안내한다. 갈등이 조금 되었지만 이미 반차도 냈고 그대로 시험을 보기로 한다. 운전을 하는데 앞이 안 보인다. 옆에서 감독관은 차선을 지켜라고 거듭 말한다. 주말 동안 여러 번 오고 갔던 길인데 생각이 안난다. 차 지붕위로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안은 습기가 차서 사이드미러가 보이질 않는다. 마지막 평행주차만 잘 하면 되는데… 결국 창문을 내린다. 밖으로 머리를 디밀고 한 번 확인해본다. 차가 주차선 안으로 잘 들어왔는지. 아버지가 가르쳐준 주차 공식을 중얼거리며 차를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비가 머리통을 후려갈기는 느낌이다. 드디어 각을 제대로 잡았다. 차가 선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자 옆에서 감독관이 말한다.
“비 때문에 많이 봐드렸어요. 합격입니다.”
드디어! 합격이다.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한 번 울리자마자 연결된다. 합격을 전하니 아버지의 상기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다.
“아, 다행이다. 내가 비가 와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이번엔 붙어야 하는데. 내가 니 또 세 번만에 붙을까봐 어찌나 걱정을 했던지. 세 번을 깨야지! 잘했다. 잘했어.”
처음이 미숙한 탓에 이리 저리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남들은 쉬이 지나가는 것들이 눈에 보일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스치고 지나갈 사소한 운전면허시험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 그것은 3이라는 숫자가 딸에게 괜한 의미로 남을까봐 마음을 졸이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나의 삼수생 생활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제서야 아버지의 마음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날, 장맛비 속에서 아버지와 나는 같은 비를 봤지만 우린 전혀 다른 풍경 속에 서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이질감, 그 낯선 감각들에게서 뭉클함이 올라온다.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것들을 내 세계로 끌어안고 보면 그 속에서 한 뼘 성장한 내가 보인다. 겪어봐야 깨닫는 성향 탓에 비록 몸은 고생했지만 인생에 있어 보다 겸허한 자세를 배워 나간다. 사소해서 작고 스쳐지나갈 법한 것들에 시선을 두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은 것을 보지만 다른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말로 뭉클함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사람.
그 날의 아버지처럼.
열 두개의 달 중, 6월의 한 조각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