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으로 인한 문제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관계나 친소를 구분하지 않고 어디에서나 누구에게서나 어느 경우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무례함이나 예의 바름은 인간관계에 관한 말이다. 예의는 일정 표현형식과 그 형식에 담겨있는 진정한 마음과 관련된다. 예의는 비록 형식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본심이 이해되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형식은 갖추었지만 다른 본심을 포장하여 악의적인 무례가 느껴지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한다.
무례는 상대방에게서 느낄 수도 있지만, 내가 상대방에게 의도와는 다르게 무례하게 행동할 수도 있다. 자신이 얼마나 무례한 언사나 행동을 하는지 또는 자신이 얼마나 예민한지는 스스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무례하다’고 알려주어도 그런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부간의 싸움도 실제 다툴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보다 서로 말을 하고 듣는 방법이 잘못된 소통 문제로 인한 경우가 훨씬 많다.
무례함의 바탕을 알아보면 우리는 평소에 듣기와 말하기가 잘 훈련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오직 주입식으로 기계적인 지식만 머릿속에 쑤셔 넣고 성적 올리기에만 열을 올렸을 뿐 실제 생활과는 다른 공부를 하였다. 도덕 공부도 문자로서 정답 맞히기 식의 도덕 문제에만 숙련되었을 뿐 실제 생활면에서는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적 올리기의 방법으로만 만들어진 예의나 도덕, 의리와 실제 행동은 다르다. 학력과 인격은 정비례 관계가 아니다. 배우지 않아도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배운 사람들이 더 영악하고 법을 잘 어기며 상대방을 더 업신여기며 무례한 경우가 허다하다.
직장에서 함께 쫓겨난 동료들과 부부 모임을 하면 “사람들이 담백하고 구질구질하지 않다. 선을 넘지 않는 예의가 발라서 좋다”며 아내는 호의적인 평을 한다. 그러면서도 일정 정도 이상의 친화관계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나이 한참 적은 후배에게도 지나치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가?
남에게 말을 함부로 놓는 친구들이 간혹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말을 놓으려 수작을 부리는 시도가 옆에서 보면 느껴진다. 본인은 친근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지만 말 놓음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심리적 우월감이나 알량한 자존심 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상대방에 대한 무례함을 일상으로 하면서 진즉 자신은 우대받고 인정받길 원한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하는 행위를 상대방이 자신에게 그렇게 할 때는 견디지 못한다.
“말 잘 놓는 아무개다”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상투적이다. 그렇게 말 놓기를 잘하는 친구끼리 서로 만나는 순간 싸움이 일어난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서로의 내심이 충돌하니 그런 다툼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안철수 씨가 장교로 군에 입대했으면서도 사병들에게 함부로 말을 놓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어머니가 아들인 자신에게 말을 우대했다는 것을 무릎팍 도사를 보고 알았다. 한때는 그의 인격이 대단할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늘 대접만 받고 우대받는 생활을 해 온 사람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무례함에 견디지 못한다.
친한 사람들 사이에 때로 툭 치고 들어오는 무례함은 당혹스럽다. 속좁아 보일 것 같아 반응을 보이기도 어렵다. 그럴 때는 다음과 같이 대응하자!
“왜 그런 말을 하는데?” 하고 상대방에게 그 의도를 직접 물어보는 방법이다. '어! 내 본심을 이 사람이 알아차렸나 보다' 하고 상대방이 당황스러워한다. 무례한 말로 시비를 걸어올 때 그냥 인정해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 맞다! 그런데 왜?”라고 반문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젊을 때는 그랬다. 사소한 무례나 잘못에도 견디지 못하고 늘 반박하고 따지다 보니 속 좁은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소극적 방법이 가장 적극적 대응일 수 있다. 알러지가 있으면 알러지 유발 물질이 있는 곳을 멀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례한 사람은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냥 일정 거리를 두고 넘어가는 것이다. 무례한 사람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친구의 교우관계를 보면서 내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창 시절을 함께 생활하며 지금까지 매주 만난다. 어쩌다가 그 모임에 합류되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깜짝 놀랐다. 서로 정치의식이나 가치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늘 만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다. 생각은 다르면서 자주 만나나, 자주 만나니 싸움도 잦다. “임마!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 났느냐”라는 심한 말로 언성을 높이다가도 “그렇다고 우리가 안 만날 사람들도 아니고 고만하자!”라는 말에 감동받는다. 싸움이 격해도 결국은 만난다는 전제를 깔고 서로를 챙긴다. 그런 관계에서는 내심에 상처 주는 극단적인 말은 서로 피한다. 그래도 만날 것이라는 전제가 되면 파국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무례라는 그 범위도 일정정도의 한계 내에서 인정되는 것이지 그 무례를 넘어서면 인간관계가 파탄 나고 그 사이는 결국 냉랭한 남으로 변한다. 무례는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어 적개심을 갖게 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황당함을 주는 경우도 있다. 대화 중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말을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무례한 말을 할 수도 있다.
친하기 때문에 의미 없이 한 말인데도 듣는 사람이 오히려 당혹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조심하지만 세밀하지 못하다 보니 때로 그런 경우가 일어난다.
생각해 보고 무례했다면 헤어질 때쯤, 아니면 시간이 지나고 다음번에 만날 때 그 말이 잘못되었음을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모를 것이라고 합리화하지 말자! 사과보다 더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말할 때 관심 기울여 듣고, 내가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늘 말을 다듬고, 소리를 낮추어 조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