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저마다의 계절이 있다(by. 못골)
문득 큰 아이가 물었던 옛날 말이 생각난다.
두 번의 임용시험에 실패하고 세 번째 시험을 치르고 온 날에,
“아버지는 그날 제가 시험을 치고 왔을 때 초조하지 않았어요?”하고 묻는다. “응! 그래 마음이 놓이더라!”
“아니, 시험 발표도 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지요?” “시험을 치고 나면 그 결과는 수험자가 가장 잘 안다. 두 번째 시험을 치고 집에 와서는 네가 매우 긴장했는데 세 번째 시험 뒤에는 왠지 여유가 있어 보여서, '이번에는 합격하겠구나' 하는 짐작이 되더라!”라고 말하니 아이가 씨익 웃는다. 하지만 생활에서 그런 여유를 갖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졸업 이후 만나 사진을 함께 하는 동료들을 보면 적당한 경제력을 갖고서 모두 열심히 잘 살고 있었다. 쳐다보면 나만 실패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시험, 임용시험을 위한 준비를 계속해 오고 있지만 연이은 실패였다. 학원 강사로 먹고살기 위해 집중하다 보니 계속된 낙방에 시험 열의도 약해져 있었다.
서면 복개천 주변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토요일에 가면 약속이 없어도 사진 모임의 회원 중 누군가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머니에 돈이 들어있지 않으니 그냥 공술을 얻어 마시고 온다. 미안하고 구차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혹시라도 돈이 주머니에 들어있으면 그놈을 쓰지 못해 안달났다. 그때 만나던 친구가 “네가 술값 내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내려고 하면 미친 듯 지랄을 하더니만!” 하고 웃는다.
그때는 주위 모든 사람이 부럽고 나는 실패한 사람 같았다.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해결하는 전형적으로 고립된 인간의 유형이었다. 힘들게 살아도 주변과 대화를 나누며 심적으로나마 도움받으면 시련을 훨씬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을 텐데 혼자이니 더 어렵다. 늘 자책만 할 뿐 어디 합리화를 위해 가져올 핑곗거리도 없었다. 극한의 가난한 상황에서 살다 보면 자존감도, 도전 의식도 모두 망가져 버린다.
그 지독한 구간을 지나가던 시절, 안토니오 그람시의 한마디가 크게 위안이 되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때는 실패라 생각해도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꾸준함은 현실을 한 단계 오를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왜 그것을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출발선은 제각각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결국 저마다의 평온에 다다르게 된다는 걸 말이다. 그때 그토록 부러웠던 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음악과 그림을 배우는 소박한 즐거움이 이제야 내 일상에 머문다.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 선물해 준 이 뒤늦은 여유가 참 귀하게 느껴진다. 그저 조금 더딜 뿐,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각자의 계절이 온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장거리 여행인 인생에서 힘들 때 격려 해주는 조력자도 꼭 필요하다. 학원에 함께 근무하던 동갑인 ㅎ총무가 있었다. 늘 서글서글한 표정에 쾌활한 긍정적 기운을 주는 친구이다. 학원에서 학교로 진입하지 못하고 애쓰는 나를 보고 그 친구가 말을 건넨다.
“야! 김 선생.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 학원에 근무한 선생들 모두 학교로 임용되어 가더라. 자네도 곧 갈 거야!”
'그럴까?' 하며 반문했지만 의지하고 싶은 말이었다. 힘든 그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말 한마디가 중요했다.
다정한 예언 덕분일까, 그 해 겨울 임용시험을 통과하고 학교장의 면접시험을 보았다.
"학원에서 근무한 것은 공무원 고시를 위해 공부하는 과정이었겠지요? 여자 고등학교라 이미 결혼한 기혼자란 조건도 괜찮고, 종교는?"
"없습니다."
재학시절 학교생활도 이만하면 만족스럽다는 질문까지 모두 우호적이었다. '아니 뭐지? 이런 분위기면 임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면접 분위기였다.
교장과의 면접을 보고 나오자 교감이 “만약에 임용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라고 물었다. “학생들을 전심전력하여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라고 답하니 만족스러워하며 웃는다. 교감이 묻는 말도 매우 긍정적이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돌아왔더니 며칠 뒤 합격하였으니, 신원증명서와 관련된 서류를 준비하여 제출하라고 한다.
“아! 이런 날, 이런 순간도 있구나! ㅎ총무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의 삶은 그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퇴직하고 집에 있으니 낯선 전화가 왔다. “어이, 김 선생! 오랜만이야” 하는 음성이 ㅎ총무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30년도 더 지났다. 그때 그가 해준 말이 신호등처럼 떠올랐다. “야! ㅎ선생 오랜만이네! 반갑다”라고 안부를 묻자 “가까이 와 있으니 술 한잔을 하자”고 한다. 술을 마시며 그때 그 말을 해주어 큰 힘이 되었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마워하니 “허! 내가 그런 말을 했느냐?”라고 웃는다.
술값을 계산하고 멀리 시외에 있는 그의 집까지 가는 택시비를 차 안으로 밀어 넣어 주고, 돌아오는 길. 이런 날이 있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