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에 대한 아버지와 두 딸의 글입니다. 2026.1.28. 서른두번째 이야기
70대 아버지, 30대 두 딸이 함께 같은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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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번째 주제 - 우리의 시간 (글쓴이 : 흔희)
글감을 '우리의 시간'으로 정하고 컴퓨터를 켠다. 허허벌판 같은 하얀색 공백 위로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자니 느닷없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맹자의 말이 떠오른다. 나로 시작해 너로 이어지고 우리가 된 삶의 반경은 점점 가족으로 나라로, 세상으로 확대된다. '우리'라는 경계가 어디까지일까. 그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누구와 어떤 시간을 채우고 있을까. 불안과 근심이 많은 세상살이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테두리는 어디에 닿아 있을까. '우리'와 '시간'이라는 이 모호한 단어는 뜻을 정의하기 나름이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것처럼. 신경쓰임의 강도는 나에게서 세상으로 확장될수록 옅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도가 옅어지더라도 관심이 나에게만 머물기보다는 너에게로, 우리에게로, 가족으로, 나라로, 세상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무언가를 갈구하기에 사람은 외로움에 허기지고 사람과 어울려 살기에 세상은 위로가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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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기도 전에 스쳐 가버린 우리들의 필름 시대(by. 못골)
우리들의 시간이라니! 그런 때가 있었을까? 왜 그렇게 사진에 몰입했을까. 그 힘든 시기에 비용도 많이 드는 사진에 마음을 두었던 건,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예술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피사체를 골라 셔터를 누르면 앵글 속의 대상이 내 작품이 된다는 성취감. 가난한 시절, 사진은 작은 피난처이기도 했다.
한국화를 배우려니 서예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말에 포기하고 사진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렇게 시작한 사진과 평생 함께 살아오니 사진에서 시로, 글쓰기로, 노래로 외연이 바뀌고 확장되어 수채 인물화를 그리는 지금에 이르렀다.
1971년, 카메라를 산 첫날은 기뻐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냥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진에 몰입하는 시간은 가난하고 외로운 내 삶을 즐겁게 해주는 작은 돌파구이자 모든 시름을 잊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1981년, 연애 시절의 아내가 허름한 구형 중고 확대기를 사주었다. 갈망하던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 구형 확대기 덕분에 여러 사람이 암실 실습을 했다. 함께 촬영을 다니는 동료는 지금도 만나면 그때 이상하게 생긴 확대기 덕분에 암실 작업을 배웠다고 한다. 방에 검은 커튼을 치고 달이 없는 밤마다 암실 작업으로 밤을 보냈다. 어머니가 윗옷을 본떠 만들어 주신 암실 백은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1983년경부터 ‘월간사진’ 잡지에 필름 없는 사진의 전망이 실렸다. “필름 없는 사진이라니!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하며 그 기사 면은 아예 제쳐 놓았다.
공간 때문에 구형 확대기를 폐기하면서도, 시간이 가면 괜찮은 확대기를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적은 돈으로 사들일 수 있는 암실 기자재를 하나씩 사 모았다. 내 암실이 완성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어느새 확대기만 사면 되는 단계가 되었다.
2003년, 불가능할 것이라는 필름 없는 꿈의 카메라가 드디어 내 곁까지 가까이 와 있었다. 디지털카메라가 시판되기 시작되었고 코닥 6490 하이엔드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칼같이 정밀한 디지털을 촬영할수록, 색이 틀어져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필름 시절 사진의 색감이 생각났다.
다시 중고 장터에서 M42 나사 렌즈와 카메라를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덧 렌즈가 20개 정도가 갖추어졌다. 그러나 사진계는 이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와 필름은 점점 더 희소해지고 있었다.
필름 없는 사진의 시대가 오고 있음에도 필름을 놓고 싶지 않았다. 확대기에서 사진을 직접 인화하던 아날로그 인화 과정에 디지털을 접목했다. 스캐너로 아날로그 필름을 읽어 디지털화하여 프린터기로 사진을 뽑아내는 반쯤은 디지털화한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친구에게서 DURST M670BW확대기를 양도받았다.
2023년, 집을 리모델링하며 아내의 양보로 큰방을 암실 공방으로 꾸몄다. 창에는 암실용 커튼을 달고 에어컨을 틀면 더운 여름에도 암실 작업이 가능한 생활 암실을 만들었다. 드디어 필름 사진을 위한 ‘나의 시간’이 온 것이다. 암실 마련은 필름 사진을 하는 사람들의 로망이고 꿈이다. 이제 모든 암실 기자재가 갖추어져 암실의 시간, 우리의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시대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디지털화에도 필름 사진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였는데, 필름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현상비, 약품값, 인화지값 등 암실 소모품값은 이제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태만하게 예측했던 코닥사는 그 태만의 대가로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유럽권이나 중국에서 소량의 필름이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다. 무료 서비스였던 135 포맷 소형 컬러 필름 한 통의 현상비가 이제는 당시의 필름 값보다 몇 배 더 비싸졌다.
이제 필름 사진은 ‘가진 자의 취미’로 분류되어 버렸다. 우리들의 날들, 우리들의 사진이 아니라 당신들의 필름 사진이 되어버렸다.
사진 혁명의 시대에 와있다. 사진을 입력하면 AI가 사진 속 말을 달리는 말이 있는 동영상으로 만들어 준다. 확대기만 마련하면 암실의 모든 게 갖춰질 것이라던 그 소박한 로망은 너무 빨리 와버린 변화에 적응조차 하지 못하고 시간에 뒤처져 스쳐 지나간다.
내가 바랐던 우리들의 시간은 그렇게 기대만 하다가 디지털에 밀려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다. 필름 시대에 사진을 시작하여 디지털 시대에 당도한, 60대와 70대의 늙은 사진사들. 우리는 이제 그것을 '우리들의 시간'이라 부르기로 한다.
열매 맺기도 전에 스쳐 지나가 버린, 우리들의 필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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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포개어지면 (by. 흔희)
태초에 닭 우는 소리 어데 들렸으랴. 아침 해가 산 그늘을 만들었다고 닭이 울음으로 신호를 보내온다. 방 안은 아직 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잠결에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6시가 채 되지 않았다. 다시 잠을 청하며 눈을 감아 보지만 이미 달아난 잠 손님은 부름에 응해주지 않는다. 몇 번 몸을 뒤척이다가 그냥 일어나자고 마음을 먹는다. 스탠드를 켜서 안경을 찾고 책을 손에 쥐어본다. 여행하면서 읽기에 어울릴 것 같아 고른 책이다. 마침 겨울이 배경이라 책과 계절이 잘 포개진다. 연필로 줄을 그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끌어 올린다.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무 냄새로 가득한 숙소의 공간을 채운다.
아침이 분주하지 않아 좋다. 방문이 슬쩍 열리고 눈도 채 뜨지 못한 아이가 침대맡으로 들어와 품속으로 파고든다. 이불로 몸을 감싸 주며 아이를 와락 끌어안아 본다. 네 아침은 항상 나를 찾으며 시작되는구나.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다른 동물에 비해 포유류는 부모에게 의지하는 기간이 꽤 길어 새끼 때의 생김새가 귀엽다고 하던데. 살아가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부모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 위함일까. 이마부터 콧대와 뺨으로 이어지는 둥근 곡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세상은 한 뼘 더 안온하게 느껴진다. 너를 끌어안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는 이 아침이 더 없이 우리에게 안온한 시간이겠지.
남편이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냄비를 꺼내고 그릇에 숟가락이 휘이 휘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고개를 빼꼼히 들고 눈을 맞춘다. 아이 손을 잡고 같이 부엌으로 나간다. 주방이 있고 아일랜드 식탁에 맞닿아 평상이 이어지는 독특한 구조이다. 평상에 아이와 같이 누우니 두 쪽의 벽면으로 나뉘어 자리 잡은 통창에 햇살이 들어온다. 눈이 부신지 손으로 이마를 가리는 네 손이, 찡긋거리는 네 눈썹이 사랑옵다. 달걀 세 개를 깨서 노란 물과 하얀 물의 경계를 허문다. 그 옆에서 남편은 베이컨을 굽고 접시에 정갈하게 옮겨 담는다. 베이컨을 굽고 남은 기름에 달걀물을 풀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든다. 젓가락을 따라 몽글몽글 뭉쳐지는 달걀의 움직임이 귀엽다. 치즈를 굽고 채소를 씻어 샐러드를 식탁에 올린다. 서툰 젓가락질로 달걀을 길어 올리며 오물거리는 네 입술이 분주해서 웃음이 난다. 웃다가 남편 얼굴을 본다. 남편도 아이에게 시선을 두고 눈을 반으로 접어가며 웃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또 있을까."
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아이는 입술을 씰룩거려 뺨을 한껏 위로 올리고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볼 옆에 갖다 댄다. 창문을 마주 보고 앉아 있던 남편이 갑자기 창문을 가리키며 눈이 온다고 말한다. 눈을 보기 힘든 부산에서 더 남쪽인 제주도로 바다 건너왔는데 이곳에서 눈을 보게 될 줄이야. 숙소 앞 마당에 심어진 발그란 동백꽃 위로 하이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다.
어제저녁에 걸려 온 엄마의 전화가 문득 생각난다. 제주도로 가기 전 꼬박 다섯 날을 독감으로 앓아누웠던 딸이 걱정되는가 보다. 여행을 방해한 건 아닌지 조심스러워하며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를 살핀다. 딸이 마흔이 넘어도 우리 엄마의 육아는 아직 끝이 나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니 괜찮나~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엄마가 마음이 놓이는지 같이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여행 가기 전.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집에 떡국 있나?"
"있지. 왜?"
"그럼 우리 떡국 좀 끓여줘. 우리 세수만 하고 넘어갈게."
"알았다."
그렇게 시작된 26년의 시작. 소고기 고명에 계란 지단, 말갛게 끓인 육수 향이 집 안에 가득하다. 뽀얀 떡국을 넣고 국그릇에 담는다. 김을 굽고 가위로 잘라 떡국 위에 올리니 아버지는 번잡게 그럴 필요가 없다며 김을 통째로 떡국에 담가 젓가락으로 김을 지그시 누른다. 얼굴에는 장난 섞인 웃음이 가득하다. 손녀 얼굴을 보다가 아버지는 꿈에 부푼 얼굴로 말한다.
"느그가 딱 저만할 때 근처에 나들이를 갔거든. 둘을 꼭 안으면 품에 싹 들어오는데 꼭 꿈꾸는 것 같더라. 꿈에서도 그리운 그때가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래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날라 그래."
평상에 앉아 창문 너머로 마당에 눈이 덮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딸아이가 궁둥이를 디밀고 내 품으로 들어온다. 이제는 제법 커서 나란히 서면 내가 저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있을까. 품 안에 아이를 안고 내리는 눈을 보고 있는 이 시기가 나에게 얼마나 허락되는 것일까. 나도 아버지처럼 지금 이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날이 오겠지. 꿈에 부푼 그때의 아버지 얼굴에 내 얼굴도 같이 포개어 본다. 눈발이 더 굵어진다. 강풍과 함께 대설 주의보가 내린다는 살벌한 소식이 들려온다. 세상은 요란한데 우리의 겨울은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소리로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나는 몇 번의 겨울을 보내고 몇 번의 눈을 더 보게 될까.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흐르면 좋겠다. 가는 겨울이 계절이 이 눈이. 나는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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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쪽팔림의 연대기(by. 아난)
“아니, 나 진짜 이혼할 거야.”
초여름으로 달려가던 쾌청한 어느 날 밤, 광안대교가 훤히 보이는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부모님께 소리쳤다. 아버지의 콧구멍이 벌렁거리며 눈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배꼽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또 경솔하게 말하네.”라며 말씀하셨다. 엄마는 편의점으로 다급히 들어가 만 원에 4캔 맥주를 테이블 위에 쏟아내며 “일단 마셔!”를 외쳤다.
가족은 서로가 긁히는 점을 잘 안다. 아버지가 쌓아 올린 삶의 데이터 속에서 나는 꽤 건방지고 손톱도 들어가지 않는 고집불통이었다. “훗날 생각하지 않고 단언하는 게 니 문제야. 니가 틀린 거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또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핏대를 세워가며 따져 말했다. 결혼 초창기 부대끼던 감정과 사건들을 펼쳐낸 나의 이야기는 엄마와 아버지 간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갑자기 엄마와 아버지의 언쟁을 내가 중재하다가, 나와 아버지의 갈등으로 전환되다가 또 셋이서 갈등을 반복했다. 우리는 ‘아니 내 말 좀 들어봐’를 소리치며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해변가로 몰리더니 웬 수많은 드론이 떠올라 밤하늘에 거대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수놓고 있었다. 이승기의 ‘나랑 결혼해 줄래~’가 온 바닷가에 울려 퍼졌다.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꽃다발로 바뀌는 드론을 보고서 “우와! 예쁘다.”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드론으로 일생일대의 프러포즈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하늘에 ‘사랑해’라는 고백을 새길 때, 우리는 땅바닥에 붙어 ‘이혼’을 내뱉으며 서로 가장 상처 줄 말을 골라서 던지고 있었다. 음악 소리를 뚫고 "아니 그래서 내 말은!"이라 외치는 우리 가족의 언쟁은 더 격렬해져만 갔다. 사랑과 이별, 축복과 절망이 광안리 앞바다에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참 부럽네요.” 음악 소리와 쟁쟁거리는 말 사이로 웬 중년의 아저씨가 우리 벤치에 슬쩍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벙찐 채 그를 바라보는 우리를 향해 그가 무심하게 자기 가족사를 툭 던졌다. "저는 아들 하나 두고 이혼했는데, 이렇게 대판 싸워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게 참 아쉽네요. 싸우는 게 좋은 거예요.” 아저씨가 후회를 쏟아내자, 엄마는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 맥주 캔을 따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아저씨, 얘는 지금 이혼하겠다고 저 난리예요!"
그 말에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그러니까요, 그게 좋은 거라니까."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 틈에서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달려들고,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하늘에서는 사랑을 말하고, 땅에서는 낯선 아저씨와 넷이 앉아서 사랑과 이별, 후회와 미련을 고함치며 이야기하는 게 무슨 상황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아버지는 깊게 팬 눈썹으로 잔뜩 찌푸리며 “니가 이혼하든 안 하든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집으로 와라. 그런데 충분히 더 생각해 봐!”라고 외치셨다. 엄마도 길어지는 격한 대화로 짜증과 지침을 한껏 담아서 “니가 ‘엄마~’하면서 오면 당연히 안아줘야지. 어휴, 야! 근데 후회 없이 하는 데까지 해봐.”라며 말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다 좋은 마음들이지만 성난 목소리에 담겨왔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며 서운하다가도, 어떤 모습의 나든 집에 오면된다는 부모님께 고마워지면서 쑥-하고 분노가 누그러졌다.
갈라진 목소리가 돌아오기도 전에, 머쓱하게도 나는 남편과 화해했다. 이혼을 왕왕 지르던 내 모습이 내 머리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무한 재생되고 있었다. 마음 졸이며 걱정하실 부모님께 빨리 ‘이혼 철회’ 입장을 알려야 했다. 전화로 대충 상황을 전하고 부모님께 남편과 함께 넷이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식당에 앉아 있는 부모님을 향해 걸어가는데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입은 웃고 눈은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오만가지의 감정이 얼굴에서 엉켰다.
엄마는 활짝 웃으며 “야! 원래 가족은 쪽팔림의 연속이다.”라 말하고는, 남편과 나를 번갈아 안아주었다. 아버지는 “명언이네. 맞다! 사는 게 원래 이렇게 사는 거다!”라며 그럴 수 있다고 따뜻하게 웃어주셨다. 나는 나의 경솔함을 반성하며 입방정을 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우리 가족은 ‘드론’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그날로 돌아가 “가족은 쪽팔림의 연속이다!”를 외치며 웃었다. 그렇게 서로의 못난 순간을 안아주고 때론 낄낄거리며 넘어간다. 우리의 시간은 쪽팔린 어제를 너그러운 오늘로 덮어주며 흘러가고 있다.
쪽팔림을 안고 걸어 나가는 가족과의 시간은 회복의 힘을 가졌다. 남들에게는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지만, 가족에게는 지우고 싶은 흑역사까지 고스란히 박제된다. 하지만 가족은 서로의 후진 바닥을 보고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쪽팔림을 함께 나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땅굴로 같이 내려와 숟가락을 건네며 뻔뻔하게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그 쪽팔림을 무릅쓴 손길 덕분에 우리는 힘든 순간에 고립되지 않고 다시 내일을 향해 걷는다. 우리의 시계는 오늘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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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땡비 어땠나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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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땡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개
- 못골👨🏻🎨 : 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왔다. 한계를 넘어 뭐든 끝까지 가는 남다른 의지력을 지녔다.
- 흔희👩🏻🎤 : 눈치를 보지않아 '인간 사이다'로 불리나 K장녀로 은은히 돌아있다. 직업 때문에 생계형 낱말수집을 한다.
- 아난👩🏻🍳 : 목구멍 보이게 웃는 큰 리액션과 미친 에너지 때문에 '어린 짐승'으로 불렸다. 빵을 굽는 방구석 빵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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