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대로(@못골)
걸어가는 순간은 생각을 정리하고 하루 삶을 반성하여 내일을 계획하게 된다.
요즘처럼 인간에게 걷는 기능이 소홀해진 날들은 인류 역사에 비하면 극히 짧다. 지구 나이 45억 년 중에 인류가 태어난 시기는 500만 년 전이다.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문명 생활을 누리게 된 시대는 불과 200년이 조금 넘는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라고 하니 지금과 같은 인간으로 적응된 기간이 불과 200년/5,000,000년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수많은 시간 동안 인간은 걸어 다니는 동물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말에 진주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왔다. 진주는 당시 시내버스가 없었다. 어디를 이동하던 그냥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산에 와서 시내버스를 처음 보고 신기했다.
우리는 걸으며 생각하고, 계획하고, 수렵하고, 교제하던 동물이다. 오늘날 우리의 동물 본성을 가장 시원하게 보여주는 때가 걷는 시간이다. 1시간 정도가 아니라 반나절, 하루, 열흘, 몇 개월 등으로 계속 걸어 보면 그런 말들이 실감된다. 등에 진 배낭은 어느 정도 걸으니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무게는 적응해 버리는가 보다.
걸어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해방감이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직 내 육체의 힘으로 걸어가는 앞길에는 걸림이 없다. 걱정에서 해방감을 얻는 장소이고 행위이다. 걸으며 온갖 사고와 경험을 한다. 꽃이 피고, 잎이 지고, 새가 울고, 해가 뜨는 시간의 변동, 계절의 순환, 생명의 변화 등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나에 대해 성찰해 보는 시간이다.
출퇴근 시 좌동에서 기장 대라리까지의 12.5km 길을 걸어가면 길 양쪽으로 차 사고로 주검이 된 많은 뱀, 고양이, 고라니, 개 등 동물들의 사체가 있다. 그리고 차에서 버린 온갖 쓰레기도 함께 뒤엉켜있다. 칡넝쿨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인도를 점령한다. 아침 출근길에는 달맞이꽃이 노랗게 피어 바람을 맞고 있다. 차를 운전해 가면 전혀 보이지 않는 풍경들이다.
걸으면 살아있다는 존재감과 함께 앞으로 걸을 길을 남겨둔 여유로움으로 즐거워진다. 걷는 행위도 일종의 마취나 중독 기미가 있다. 하기야 중세 서양에는 걷는 자유도 허용되지 않아 걷는 인간들을 잡아 가두었다고 한다. 봄에는 길 양쪽에 하얀 벚꽃으로 터널을 만들어 눈처럼 꽃잎이 떨어지는 날이나, 11월 어느 날 노랗게 은행잎이 떨어져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 덮이면 아침 출근길을 포기하고 그냥 어디로든 차를 운전해 기약 없이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야외 수업을 하고 싶어 좌동 Y고등학교로 갔고,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여 원도 없이 걸어보고 싶어 기장 K고등학교를 희망했다. 걷고 싶어 보충수업이나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았다. 대가를 받는 방과 후 수업은 내가 아니더라도 하고 싶어 하는 직원이 여럿 있다. 나이가 들면 아이들이 싫어지고 멀어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아이들이 더 좋았다. 근무시간동안 아이들에게 성의를 다하고 가벼운 마음이 되어 집으로 향한다.
퇴근 시간 가방을 꾸려서 등에 메고 인근 가게에 들러 약간의 간식과 물을 사면 걸어갈 준비는 갖추어진다. 등산을 자주 다니기 때문에 물은 언제나 습관처럼 휴대한다. 차를 타고 가면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걸으며 천천히 생각하면서 주변을 감상하며 걸으면 하루의 시간, 요일, 월과 계절감을 느끼며 간다. 봄에는 대청초등학교 정문에서 기장 고개까지 기장대로가 아닌 무곡리 쪽 길로 가면 가로수길은 모두 벚꽃으로 어우러져 있고 무곡을 지날 때쯤이면 무곡리 뒷산에는 이제 피어오른 새순으로 산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이때부터 시시때때로 주변 경관이 바뀐다. 산수유꽃이 노랗게 열매처럼 가지에 매달리면 겨울은 모두 가버렸구나 하는 허탈이 온다.
기록 카드를 들고 새로 옮겨갈 근무지로 찾아갈 때쯤이면 2월 말이다. 이때는 매화가 양지바른 곳에서는 피기 시작한다. 무곡리 밭 여기저기 피어있는 하얀 매화가 봉오리를 터뜨릴 때쯤이면 이제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린다. 매화가 시들고 나면 벚꽃이 피고 이때는 겹벚꽃처럼 보이는 연분홍의 복숭아꽃(복사꽃)이 만발한다. 밥풀때기 꽃이 피고, 노란 개나리가 초록으로 바뀌면 내가 걷는 길은 벚꽃이 어우러져 환상 속의 꽃길이 된다. 습관으로 늘 휴대하는 사진기에는 걸어가는 순간순간 눈에 들어오는 피사체를 담으며 걸어간다. 일상의 출퇴근 길이 촬영하는 시간들이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길 양쪽이 노란 개나리꽃들로 장식이 되면 아! 이제 본격적으로 봄이 오나 보다! 나의 퇴근길은 기장 수령산 밑에서 대라리 청강초등학교 앞을 거쳐 간다. 무곡리에서 다시 고개를 넘어가면 내리 못 미쳐 지하도로 좌회전을 한다. 이어서 석산리에서 왼쪽으로 산 밑을 꺾어 들어가면 논 옆으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길가에 크게 자라 그늘을 내리고 있는 은행나무를 지나면 일본식 가옥이 한 채 있다. 그 집에는 늘 여름꽃인 능소화를 길러 걷는 사람을 즐겁게 해 준다. 오른쪽으로는 논에 물을 가두어 연못으로 만든 푸른색을 물 위로 드러낸 미나리꽝이다. 지금은 외국인 학교가 있는 곳이 옛날 삼양라면 회사였다고 한다. 그렇게 걸어가면 지금의 오시리아역에 못 미쳐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작은 산으로 분리되었던 공수마을과 석산리 사이의 산을 포크레인으로 허물어 없애버리고 평지가 된 곳에 오시리아역이 덩그러니 서 있다. 오시리아란 이상한 역이름은 오랑대와 시랑대를 합쳐 명칭을 만들었다. ‘오시랑대역’ 이렇게 부르면 알기 쉽고 얼마나 정겨워! 왜! 우린 우리 것을 천시할까? 무슨 버터냄새가 나는 이상한 단어로 틀어서 만든 역이름이 낯설고 부끄럽다. 미나리꽝과 논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 3~4명 정도의 한가한 낚시꾼들이 퇴근 시간쯤에는 늘 낚시하고 있다. 걸어가다가 낚시하는 광경을 구경한다. 옆에 서서 지켜보면 메기나 붕어가 가끔 올라온다. 도로에는 차들이 쉴 새 없이 다니는데 도로에서 벗어나 조금만 걸어 들어오면 이렇게 낚시할 정도의 한가한 농촌이다. 이처럼 쉽게 여유가 주어지는 곳은 흔한 장소가 아니다.
석산리에서 송정천을 건너면 송정역에 이르고 송정역 앞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송정 바닷가에 앉아 깔딱 요기를 한다. 송정 바닷가에 앉아 어느 날은 거친 빵을 입으로 처넣으니 삶의 덧없음이 느껴져 눈물이 난 때도 있다. 윈드서핑을 즐기던 동료 원어민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수평선을 시름없이 바라보다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선다. 구덕포를 지나 청사포, 청사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고개를 올라가면 고층 건물이 시위하듯 서 있고 그 고개를 넘어서면 좌동이다. 좌 2동이 나의 서식지이다. 12.5km 토, 일요일이면 송정에서 바닷길을 따라 공수마을, 동암마을, 서암, 다시 해광사를 지나 대변. 대변항에서 돌아오거나 한잔 술을 마시고 거나해져 벗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오면 하루해가 저문다. 걷는 그 순간이 즐거움이다. 걷는 길이 나의 감정 해우소이고 그 시간이 해우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