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과 여행 그 어느 경계에서(by. 아난)
직장에서 맺는 인간관계에는 늘 경계심을 바짝 세운다. 말이 돌고 돌아 비수가 되기도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급변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회사 동료가 “나 믿지 마. 술 취해서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나가서 너 발등 찍히면 어떡해."라고 말할 때 이해도 되고 씁쓸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필요할 때만 육지와 연결되는 하나의 섬처럼 살아간다. 업무에 집중하고 회사에서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바란다. 그런 내게 직장 동료와 생전 처음 가보는 미국에서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4일을 봉사해야 한다면? 온몸을 에워싸는 불편함에 망한 여행지로서 기억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지금 내게 어느 여행보다 강렬하게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회사에서 팀을 구성하여 출장 계획서를 내면 적절한 팀을 선정하여 1주일 동안 해외 연수를 보내주는 제도가 있다. 회사에서 근무연수도, 결도 비슷한 사람들과 한 팀을 만들었다. 선정 가능성보다는 가더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과 가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가고자 마음먹은 행사는 미국 텍사스 주의 오스틴에서 열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라는 행사였다. 우연히 친구를 통해 접한 뒤, 마음 한 켠에 언젠가 가보고 싶은 행사로 넣어두었는데 행사는 점점 성장하여 세계 최대의 콘텐츠 축제가 되었다. 작은 시골 마을의 음악 축제로 시작해 이제는 각종 영화와 TV 시리즈가 전 세계에 최초로 공개되는 장이다. 최첨단 미래 기술을 전시하고 연사들이 강연하며 다양한 산업 전체를 아우르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행사로 성장했다. 전시회인지 콘퍼런스인지 축제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행사다.
가겠다는 마음과는 별개로 문제는 행사 입장료였다. 모든 행사장에 입장 가능한 플래티넘 입장권은 무려 280만 원이었다. 1인당 300만 원 정도인 회사의 지원금이 대부분 사라질 판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행사 홈페이지에서 봉사자들에게는 입장권이 제공된다는 설명을 보았다. 무작정 행사 사무국에 '한국에서 가도 봉사에 참여 가능한지'를 메일로 물어보았다.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거늘 너무나 친절하게 답장과 함께 화상회의가 잡혔다. 그렇게 우리는 음악 축제에서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4일 동안 봉사를 진행하고 플래티넘 배지를 받기로 확답받았다.
새벽 2시까지 꽉 찬 젊은이들의 패기로운 일정과 심사위원들이 '안 됐으면 어쩌려고 미국 사무국 측과 이렇게까지 해놨냐'라고 할 정도로 준비를 단단히 해놓아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리 팀이 선정되었다!
우리는 가자마자 행사 규모에 압도되었다. 활자로 읽은 '도시 전체가 축제'라는 것과 그 축제의 현장에 들어가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발 닿는 곳마다 사람들이 행사 배지를 목에 걸고 돌아다녔다. 어느 곳에서든 음악이 흘러나오고 도시 전체가 행사 참가자들을 반겼다. 공식·비공식 장소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시내 식당, 호텔, 카페, 영화관, 바 도시 전체에서 축제가 열렸다. 굳이 통계와 수치를 내지 않아도 눈 돌리는 곳 어디에나 행사 참가자들이 있고 번성하는 도시의 활력이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처음 가본 미국은 ‘네트워킹에 미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음식 주문을 마치면 이름을 받아 적고는 어설픈 발음으로 우리의 이름을 불러대며 말을 걸어왔다. 행사 참가자들은 끝없이 명함을 주고받고 몇 시간을 서서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만난 사람과 대화를 끝내고 보면 어느새 그가 소개한 앱이 내 폰에 설치되어 있었다. 어느 상점에서든 점원들은 “오케이?”하며 괜찮냐고 물어왔다. 모두가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토종 한국인인 나는 어설픈 영어로 답하려니 기가 쏙쏙 빠져나갔다.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더 깊은 대화가 오갈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행사의 슬로건이 ‘KEEP AUSTIN WEIRD’ 일 정도로 다양성에 열려있다. 슬로건의 의미처럼 ‘이상하고 괴짜스럽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이 도시를 받아들이고 존중하자’는 의미가 행사 전반에 뿌리내려있다. 수많은 백발의 노인들이 곳곳에서 같이 “락앤롤!”을 외치며 자원봉사를 했다. 백발에 인자한 미소를 띤 어르신과 무지개색 머리에 무지개색 옷을 입은 사람을 연사 대기실의 담당자라며 소개받을 때는 머리를 망치로 댕-하고 맞는 느낌이었다. 행사에는 모름지기 칼정장과 개막식 의전이 강조되는 경직된 행사 문화에 젖어 있다가, 어떤 모습이든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즐거운 에너지로 일하는 열린 마인드가 정말 보기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세계적인 행사로 클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갖고 찾아갔는데 정답은 결국 사람이었다. 이 행사를 사람으로 치면 자기가 뭘 잘하는지 알고 그걸 자칭이든 타칭이든 강조하면서 계속 키워나가 성공한 느낌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인정하든 말든 자신들이 ‘전 세계 음악의 수도’라 외치며 도시만의 색깔을 강화해 나갔다. 어딜 가나 노래 부르는 바와 펍이 즐비하고 공항에서까지 라이브 공연이 이어질 정도로 도시 전체가 음악에 흠뻑 취해 있었다. 같이 일했던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개인 휴가를 내서 10년 넘게 행사에 참여를 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질문에 ‘재밌잖아!’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 행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우리가 짧은 시간 동안 행사를 제대로 보고 가지 못할까 봐 저마다 폰을 꺼내 자신들이 저장해 놓은 행사 정보를 알려주려 애썼다. 행사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행사에 응축되어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되고 그 사람들이 다시 이 행사의 팬이 되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에너지를 양분 삼아 자연스럽게 행사도 도시도 성장해 온 시간들이 휘리릭 눈앞을 지나갔다.
새벽 2시에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때면 다들 말이 없었다. 귀에서 피가 날 지경으로 방방거리는 음악소리와 목이 매캐할 정도로 담배 냄새에 찌들어 돌아왔다. 음악이 넘쳐나는 골목을 지나기만 해도 다들 기운이 빠져 말없이 털래털래 걸었다. 그러다 숙소에서 귀하디 귀한 컵라면과 맥주 한 캔과 아이스크림을 펼쳐놓고 하루를 복기하다 보면 행복 가득한 기억이 저절로 살아났다. 계획서 PPT 마지막 장에 사진으로만 봤던 영화 행사장에 직접 갔을 때는 모두 벅차올랐다. 기대되는 내일과 이 기억을 추억할 먼 미래가 함께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같이 이 시간을 공유하면서 꺼내 볼 사람들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었다. 소문과 정치가 난무하는 회사 생활 속에서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코트를 벗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회사란 자고로 할 줄 안다고 말하면 안 되고 전화받는 순간 담당자가 되어 내 이름을 불리면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 출장에서는 누구 하나에게 일이 몰리지 않게 서로 자발적으로 일을 나눠 가져가고 함께 모든 과정을 만들어 나갔다. 오스틴에서 자극받는 하나하나에 모두 같이 감탄하며 돌아가 무엇을 적용하면 좋을지부터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내내 대화했다. 회사 생활에 회의감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는데 역설적이게도 회사가 만들어준 멍석에 회사 사람들로부터 치유를 받고 희망을 보았다.
미국 오스틴에서 불살랐던 1주일은 출장과 여행 그 어느 경계에 걸쳐진 신기한 경험이었다.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배우고 새로운 문화권에서 충격과 자극을 얻었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온 출장인데도 마치 친구들과 여행 온 것처럼 신나게 웃고 즐기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에 직장 동료와의 조합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는데 이번 출장을 계기로 관계에 대한 시각이 많이 확장되었다.
직장 동료든 친구든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한 망한 여행이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