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볼드모트(by. 아난)
'역사'는 왜 이토록 분절된 건지 의문이었다. '작자 미상', '~설로 내려온다.'라는 역사책 문구를 볼 때면 신기했다. 어제와 오늘은 연결되어 있고 그 흐름은 끊긴 적이 없다. 빙하기처럼 갑자기 모두가 사라졌다가 역사가 쓰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뚝뚝 끊겨있는 걸까? 그렇게 지식으로만 멈춰있던 역사가 내 인생으로 들어오면서, 내 오랜 의문을 해결하게 해준 한국사의 한 장면을 마주하였다.
내 평생 따라다니는 별명 중 하나는 '박근혜'다. 그녀와 나는 같은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듣고서 '박근혜'를 언급하며 어색함을 떨쳐내려 했다. 무심코 '박근혜 씨'라고 나를 잘못 불러놓고 뭐라고 했는지 기억조차 못 하는 사람들을 늘 만났다.
내 이름을 보고 대개들 나의 성향을 넘겨짚었다. 거기에, 그녀의 지지 텃밭 도시 출신, 그녀와 같은 대학인 정보까지 더해지면 나에 대한 낯선 사람들의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첫 만남 때부터 은은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던 교수님이 계셨다. 어느 날 그녀의 지지 모임에 청년으로서 참여해달라며 대뜸 요청하셨는데, 첫 만남 때와 똑 닮은 미소를 보여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인해 이어진 '박근혜'는 내게 해리포터 속 '볼드모트' 같은 존재였다. 해리포터가 끔찍이 싫어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볼드모트'를 불편해하는 것과 닮아있었다.
나의 볼드모트가 대통령이 될 때는 '앞으로 좀 피곤하겠거니' 했다. 역시나 사람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VIP'라는 어색한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탄핵 정국이 되자 '근혜'라는 이름의 의미는 완전히 반대가 되며 나라가 뒤집어졌다. 박근혜를 향한 풍자와 비난 문구들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엄청난 군중들이 '근혜야!'라고 외치며 시작하는 살벌한 문구들을 접할 때면 기분이 묘했다.
나의 볼드모트가 몰락해 가던 국정농단 사태를 관통하면서 '내가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아 나가고 있구나' 실감했다.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하며 미래의 교과서 문구가 될 만한 문장과 사진을 나지막이 상상해 보곤 했다.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으로 기록된 역사 속 '박근혜'는 우리 사회가 애써 무시했던 문제의 정수만 모은 진액 같았다. 민간인 최순실의 입김에 따라 운영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은폐, 재벌 비자금 조성, 문화계 블랙리스트, 입시 비리, 무속신앙 등으로 무능함이 파헤쳐지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게 했다.
그런데 그 역사의 순간이 '지금' 지나가고 있는데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원인과 결과가 밝혀지지 않았다. 대통령기록물, 보안 등의 이유로 정보는 독점되어 있었고, 언론과 학계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설만 난무했다. 언론은 이 사태로부터 아무런 책임이 없는 제 3자이자 자유로운 심판자의 자세로 자극적인 소식을 실어 나르며 피로감을 더했다. 힘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정보가 독점되고 문제의 경중이 정해졌다. 재벌과의 비리를 질타하다가도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론은 언제든 뒤바뀌었다.
세세한 속사정이야 어찌 되든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를 들었을 때 나는 정치적 효능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어렵다던 이념 논쟁과 지역색을 다 뛰어넘고서, 온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라고 함께 외치는 모습에 벅찼다. 추운 겨울부터 봄까지 이어진 평화적인 촛불 운동으로 대통령을 해고한 나라라는 점이 나를 자랑스럽게 했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우리의 역사는 '가해자 중심'이었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사면받는 역대 대통령들처럼 그녀도 징역 22년 형을 받았으나 4년 9개월 만에 사면을 받고 회고록도 내며 잘 살고 있고, 그녀의 변호사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정농단을 주도했던 정치인, 기업인들에 대한 처벌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제도는 손을 본 건지 확인하지 않은 채 잊혔다.
역사가 왜 이토록 뚝뚝 끊겼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냥 넘겨버렸던 세세한 속사정이 진짜 중요한 대목이었다. 나는 집요하게 그들의 최후를 쫓지 않았기에 '죄지은 사람은 벌받는다'라는 정의로운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아 제2의 국정농단을 막아야 한다는 마음을 놓쳤다. 역사의 한 순간에 시간을 같이할 뿐 나는 방관자였다.
'언제까지 과거에 젖어있을 것인가.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문구로 우리 사회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운 채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지금까지 왔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의 찬란함에 집중하며 그 이면에 곪아있던 친일파 청산 실패, 베트남 전쟁 범죄, 4.3 학살, 5.18 항쟁, 군사독재, 정경유착은 회피하다시피 한 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라고 고구마 줄기 캐듯 거슬러 올라가면, 외세에 의존하며 제 이익에만 급급했던 권력층이 가득한 구한말까지 가게 된다. 그때마다 제대로 역사를 알지 못하여 지겨울 만큼 비슷한 구조를 반복하며 지금의 윤석열 내란까지 이어져 왔음이 보인다. 과거에도 그래왔듯 지금의 역사도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정치적 의혹일 뿐이라며 왜곡되어 잊히게 되는 걸까?
올해 1월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기록물이 비공개인 것에 대해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지금 제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윤석열 내란의 진실도 세월호처럼 10년이 지나고서도 기록물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과 똑 닮아 있을지 모른다. 내 머릿속 상상에 존재하던 미래 역사 교과서에서 박근혜 국정 농단은 탄핵 엔딩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뇌물을 주고받으며 재벌과 기득권층의 세습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피해는 누가 떠안았을까? 기업들의 입맛대로 더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게 된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했고, 정부의 폐쇄적인 소통 구조와 무능함 때문에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때문에 자기 검열의 시대를 살았다.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록하며 귀 기울이는 역사가 되었으면 하기에 이렇게 여러 문장 보태어 남겨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