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의 기억은 어떤 것은 상세하고 어떤 것은 듬성듬성 잘려있다. 심리상담사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트라우마가 사라진 건 아니라서 말로 꺼내 질서화하지 않는 한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리라고, 슬픔을 어떻게 질서화할까.”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소설 속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미완성된 관계로 내 무의식 어딘가에 박혀 늘 찜찜하게 남아있던 기억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올랐다. 책장을 덮고서 나는 그때로 돌아갔다. 무엇이 마음속에 남아버린 것인지 질서화 해보고 싶었다.
중학교 때 수업을 듣고 있으면 1분단 끝에 앉은 친구H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곤 했다. 그러면 모두 별일 아닌 듯 수업을 잠시 멈췄다. 반장과 남자 부반장을 비롯한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쓰러진 친구의 고개를 돌려 기도를 확보하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발 빠른 친구는 뛰어가 담임 선생님을 모셔 오고, 단발의 여자아이는 쓰러진 친구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쓰러지던 그 친구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아픈 친구H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기만 해도 거친 욕을 쏟아내고 책상을 치며 위협했다. 친구H의 곁에 다가가기 힘든 이유에서일까? 우리 반 반장 무리는 지난해에 이어 H와 같은 반으로 그대로 올라와 능숙하게 구조대 역할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처음 본 나는 H가 넘어가는 순간이 늘 무서웠다. H가 쓰러질 때마다 그의 비명이 신호탄처럼 터졌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귀에 꽂히듯 날카로운 굉음이 내 몸을 에워쌌다. 그 비명은 H가 온 힘을 다해 붙잡고 넘어간 책상이 ‘탕‘하고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로 이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이 항상 길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친구가 무안하지 않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해야 한다며 친구들은 모두 놀라움을 숨겼다. 정신을 잃고 몸을 흔들며 입에서 거품을 쏟아내고 있는 친구를 쳐다봐선 안 되었다. 그렇게 1분단 뒤쪽은 언제나 바라봐서는 안 되는 곳이 되었다. 2학기가 지나갈 때쯤에는 정말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점점 무뎌져 갔다. 우리 반은 ‘있었던 사건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학습해 나갔다. 친구가 쓰러져도 이 상황에서 멀어질 수 있게 다른 친구와 농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동시에, 이 시절 나는 ’누가 약자인지‘ 매일 뒤바뀌는 혼란스러운 곳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교실 뒤편에는 싸움 붙이기가 놀이처럼 자주 열리곤 했다. 반 남자아이 중 가장 약한 아이를 골라 H가 팰 수 있게 했다. 그 싸움판의 주도자는 반장 무리였다. 어느 날 남자 부반장은 별명이 ’프랑켄슈타인’이었던 친구를 교실 뒤에 세웠다. 그러면 싸움판이 열려 H는 주먹으로 그를 한껏 쳤다. ‘프랑켄슈타인‘은 도망 다니거나 주먹을 막으려 애썼다. 그러나 H에게 저항하거나 때릴 수가 없었다. H는 피를 흘리면 지혈이 되지 않아 작은 상처도 큰 위험이 되는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이 차라리 뛰어나갔으면 했지만, 둘을 둥글게 에워싼 남자아이들의 원이 더 강력했다. 흥분한 남자아이들이 도망쳐 나가려는 프랑켄슈타인을 원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반장은 그 광경을 큰 소리로 중계하며 박수치고 웃기 바빴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반 아이들은 그 모습에 늘 그렇듯 능숙하게 대처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기’.
사람의 어떤 감정이나 기억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간다. 여느 때와 비슷한 그저 평범한 어느 날의 기억이라 생각했던 순간이 아무리 해도 잊히지 않을 때 그제야 깨닫는다. '그때 나는 아무렇지 않은게 아니었구나. 무언가 내 마음속에 큰 진폭의 감정이 오갔었구나.'하며 내 감정을 뒤늦게 알게 된다. 아니 이런 기억은 대체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진다.
나는 그때 혼란스러웠다. 누가 약자일까? 희귀병을 앓고 있는 H가 약자일까? 아니면 H에게 맞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이 더 약자일까? 반에서 손꼽히게 큰 덩치인 프랑켄슈타인이 그래도 더 강하지 않을까? 무엇이 약자를 결정짓는 걸까? 내가 만약 둘 중에 도와야 한다면 누구를 도와야 할까? 맞을 때는 프랑켄슈타인이 더 약자이지만, 그러다 H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었다. 정작 판을 벌인 사람들은 '누가 쓰러지든 상관없어'하며 한 발 빠져서 유유히 웃고만 있었다. 돌이켜 볼수록 약자끼리 할퀴는 그 싸움판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20년도 더 된 까마득한 일인데, 이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내가 후회된다. '때려봐' 하며 자극하는 아이들의 소리는 여전히 날 고통스럽게 한다. 흘기듯 잠시 보았던 순간, 내 눈에 담겼던 공포에 질린 프랑켄슈타인의 표정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때는 프랑켄슈타인도, H도, 반장무리도 큰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로 정의했다. 교실 뒤와 나를 명확하게 선을 긋고 돌아보지 않았던 내가 부끄럽다.
반장 무리의 이중적인 면을 선생님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반장은 외고 진학을 위해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갔다. 잘 보여야 하는 사람과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의 기준이 명확했던 아이들이었다. 피곤하게도 그들에게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반장이 좋아하는 남자의 여자 친구가 나의 친한 친구라는 이유에서였다. 내 친구A가 교실 앞 복도를 지나갈 때면 반장 무리는 무슨 작전을 수행하듯 움직였다. 친구를 자극하기 위해 창문에 붙어 준비된 대사를 뱉으며 시비를 걸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A와 신나게 웃다 교실에 들어오면 싸늘함이 느껴졌다. 반장 무리의 그 일사불란함은 내게도 이어지곤 했다. 어떤 회의에서나 내가 의견을 낼 때면 반장의 주도 하에 비웃음과 기분 나쁜 수군거림이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하게 학교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내 마음은 아무렇지 않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의 기억이 듬성듬성 남아있다. 남자 부반장이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크게 내거나, 한 남자아이가 나의 어깨를 확 치며 제압하려 하던 것이 어떤 흉터처럼 떠오르곤 한다. 그때 나는 사과를 요구하거나 중재자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택한 방식은 무시였다. 그냥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어이가 없어 별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곁에 있던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일 년 내내 나를 괴롭혔던 무안함이나 당혹감은 오래도록 남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들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왜 나는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걸까? 왜 뭘 해보지도 않고 무력감이 들었던 걸까?
반장은 계획대로 외고 진학에 성공하였고 그 이후에 반장 무리는 내 인생에서 사라진 듯했다. 그러다 대학교 방학 때 오랜만에 내려온 부산에서 세상 초췌한 모습으로 건물에서 나오는 어느 여자를 보았다. 모르는 사람이라 시선을 거두었다가 눈이 머무르는 느낌이라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중학교 때 반장이었다. 온 몸에 물기가 다 사라진 듯 초라한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늘 기세등등하던 그녀와는 정반대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 놀란 그녀를 보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묘하게 통쾌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30대가 막 되었을 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를 통해 반장 무리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천년의 우정을 이어갈 것 같던 그들은 모두 와해되었다. 남자 부반장은 전업 투자자라는 이름으로 방 밖을 나서지 못하였고, 다른 아이들도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듯하였다.
그들이 망해버린 세상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좁디좁은 교실은 손바닥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가릴 수 있었겠지만,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결말이 되어 기뻤다. 그러나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마음이 안 좋다. ‘그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후회가 남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로 돌아가서 다들 그만하라고 외치면 속이 후련할까? 이건 잘못된 행동이고 무례함을 멈추라고? 그렇게 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은 불가능한 문장이라는 걸 배웠다. 어떤 식으로든, 기억의 파편이든, 감정으로든 남는다.